1923년 가을 마쓰에의 초혼제招魂祭 날 비가 오고 있었다. 마
쓰에중학교 학생들은 초혼제에 참가하기 위해 아카야마의 언덕
을 4열 종대로 내려가던 참이었다. 비가 내리고 있었으나 조금
전 다나카 교장에게 전사자戰死者들의 노고를 생각해서 우산을
쓰지 말라는 훈화를 들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비를 맞으면서 걸
었다. 그 옆을 요시가와 선생과 구마노 선생이 우산을 쓰고 지
나갔다. 그것을 보자 대열 중에서 "어어! " 하고 크게 외친 학생
이 있었다. 구마노 선생의 안경이 번쩍하고 빛났다. 선생은 후다
닥 우산을 접더니 대열 속으로 들어와서는 그 학생을 줄 밖으로
끌고 나가 우산을 들어 내리갈겼다.
사건은 의외의 결과로 발전했다. 학생들은 초혼제가 끝나자
산모퉁이 석축 밑에 모여서 선생의 사과를 요구했다. 만일 뜻대
로 안 된다면 동맹 휴교까지 하자고 결의했다. 한편 교사회에서
는 그 학생의 퇴학이 논의되고 있었다. 그다음 날 마쓰에신문에
이 사건이 보도되었다. 투고란에는 선생이 그르다느니, 학생이
나쁘다느니 하는 토론이 날마다 게재되었다. 마쓰에중학교에서
는 이런 문제가 일어난 것이 개교 이래 처음이었으므로, 선배들
이 나서서 여러 가지로 조정 역할을 했다. 그러는 동안에 최후의
심판이 학생감에서 열리게 되었다. 선생들이 죽 늘어앉아 있는
가운데 문제의 학생이 나왔다. 학생 일동은 절대로 사과해서는
안 된다고 했다. 재판장은 학생 감독인 야마모도 선생이었다. 문
답은 다음과 같았다.
"넌 그때 뭐라고 말했나?"
"'어어! '라고 했습니다. "
"'어어! 란 뭐야?"
"네, 감탄사입니다. "
"좋아, 알았다. 돌아가라! "
이것으로 만사가 원만히 낙착되었다. 그 학생은 그때 일로 완
전히 달라졌다. 그는 학교 선생에게 매를 맞을 정도의 못된 놈이
었다. 그러나 그는 '보라, 나는 구마노 선생을 제압할 수 있을 정
도의 교육자가 되어 보일 테다. ' 하고 묵묵히 공부에 열중했다.
그리고 10년 후에 대학을 졸업했다.
그때 구마노 선생에 대한 그의 원한은 감사의 마음으로 변해있
었다. 그때 그 매를 맞지 않았더라면 개구쟁이로서 겨우 중학교
나 졸업한 정도의 평범한 인간으로 끝났을지 모른다. 그는 대학
교를 졸업하고 복수가 아니라 감사하기 위해서 곧바로 마쓰에로
와서 구마노 선생을 찾았다. 그러나 선생은 이미 그 전해에 세상
을 떠났다는 것이다.
그 학생이 바로 나다.
나는 대학 교단에 서서 많은 젊은이를 지도해 왔으나, 교육의
중점을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속에 잠자고 있는 독행력獨行力을
불러일으키는 것에 두었다.
내 머리는 저 구마노 선생의 일격의 아픔을 잊지 않는다. 그래
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계속 공부하는 것이다.